B cut
김태형 | 김형균 | 박진범 | 송윤형 | 엄혜리 | 이경란 | 정은경
달
이틀만에 읽었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1. 북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년이상 일을 했다. 애정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많이 대입해봤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게 재능이 있을까?', '편집자와 작가들과의 줄다리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등등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봤다. 그런데 그 질문들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이 있는가?'인 것 같다. 난 분명 책을 사랑한다.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고 아껴왔다. 지금도 책이 정말 좋다. 북디자인을 상상해본다... 텍스트를 읽고 그에 맞는 얼굴을 그려내는 것. 두렵다. 이미 디자인된 책표지를 보고 좋다, 별로다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쉽다. 그러나 그것을 창조해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슴이 뛰는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디자인 과정에 포함된 회의 설득 인쇄감리 등을 제외하고 얼굴을 만들어내는 과정만 생각해보자.
그동안 학교를 다니며 회사를 다니며 디자인 작업을 하며 내가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동아리에서 내가 글자디자인 세미나를 해서 기획하고 디자인까지 해서 손에 쥐었을때가 아니었을까? 표지는 특별하지도 않고 안전한 디자인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 행복감을 북디자인을할때 느낄수있을것 같다. 그 얇고 가벼운 책한권이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엄청난 의미가 된다. 그 책이 소장하고 싶고 선물하고 싶고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을만큼 아끼는 책인데 디자인도 좋다면 독자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큰 행복이지 않을까?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게 책에 애정이 있고 애정이 있으면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것이다. 더 많은 생각과 시간을 투자하면 더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이 책에도 많은 선배 디자이너들이 그것을 얘기했다. 많이 해보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것.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2. 선배 디자이너들의 말
1년 동안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들. 깨달은 것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었다.
- 내용을 파악하는 강도가 높아질수록 콘셉트와 맥락은 간결해진다.
- 편견으로 가득한 보수적인 논리에서 한 뼘이라도 벗어난 작업을 구상중이라면, 사전에 작업 의도를 충분히 납득시켜야 하고 그럴듯하게 펼쳐 보이는 것까지도 디자이너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
- 완성도라는 것은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으로 성취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부합하는 일련의 방법들을 찾아내고, 선택의 과정들이 지시하는 최선의 완결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다.
- 그것들이 무엇이 표지로 당첨되든 후회하지 않을 것들이어야 한다. (A안을 위한 B안은 없다)
- 책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디자인 발상은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후에 남는 사람은 월등하게 뛰어나거나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친구가 아니다.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나중에는 디자인 잘한다, 감각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많은 후배들이 내가 손봐준 디자인에 다시 손을 대지 못한다. 개중에 몇 명은 손을 대서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온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니까 다시 해보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찾는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으려고 고민을 하는 사람.
- 나같은 경우는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그들이 말하는 대로도 작업해보고 역시 아니다 싶으면 더 나은 안을 역으로 보여주는 편이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나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논리와 경험을 앞세워 싸우고 서로 감정을 소모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 작가의 디자인 의견을 들을 때는 그분이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던하게'라는 말의 기준과 감성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들었을 때는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해서 확인해야 한다.
- 너무 앞서가면 안 돼. 반걸음만 앞서가야 해.
-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의 일은 그 책을 읽는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 땅 어딘가에 내가 디자인한 책을 손에 쥐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하면, 자연스럽게 일에 애정과 책임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 원고에 오롯이 마음을 준다는 것, 고되더라도 그렇게 작업할 때 디자인에 가치가 담긴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내겐 여러 번이다.
- 클라이언트의 기대보다 한 뼘 더 애정을 갖고 더 시도해보는 적극성이 있어야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 북디자인의 본질은 꾸밈, 예쁨, 새로움에 있지 않으며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읽히도록 하면서 읽는 동안 사라져버리는 디자인, 그게 핵심이라는 거다.
- 책을 디자인하고 작가의 맘에 드는 것처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흡족하면서 작가도 좋아해주는 디자인을 했을 때 가장 뿌듯하다. 특히 소설 표지를 디자인한다는 건 때론 한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는 작업 같다. 그래서 작가의 만족이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어쩌면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책을 통해 잠시나마 서로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연결돼 있는 기분, 그게 바로 '살아 있다'의 느낌 아닐까.
멋지다. 나도 프로가 되고 나이를 꽤 먹으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생각 또한 바보 같은 것일까? 내가 프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건,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인가? 아니. 거기엔 분명 아름다움이 있다. 그 사람의 땀과 노력이 보이는 것이다. 그를 통해 얻어진 통찰과 기술 등이 계속 눈에 밟힌다. 그것이 너무도 아름답다. 멋있다. 나도 무언가를 위해 순수하게 내 땀을 바치고 싶다. 바칠만한 놈에게!
책이라는 놈은 분명 그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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