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말하다>
김영하 | 문학동네
디자인 윤종윤 이주영 최미영
1. 디자인
문학동네의 디자인은 대부분 정말 아쉽고 안탑깝다. 그들이 일궈낸 문학적 성과와 달리 디자인은 너무도 보잘것 없다. 왜 이토록 안전하고 재미없고 뻔한길을 가는가. '말하다'라는 제목에 굳이 귀와 말하는 사람의 그림을 붙여놓은건 왜일까. 쉽고 대중적으로는 보인다.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 재미없는 디자인이 아닌가. 말하다라는 제목때문에 말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거기다 귀라니. 커버를 벝겨내고 나오는 수많은 귀는 또 뭔가. 굳이 손가락 아이콘을 올려놓은건 또 무슨 의미인가. 책이 쉬워보이는 역할 말고 이 디자인이 한 게 무엇인가. 어짜피 김영하인데, 힐링캠프에도 나온 김영하인데 김영하의 이름만 달아놓으면 책이 팔릴텐데 이런 쉬운 디자인 말고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쉬우면서도 좋은 디자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지하려면 진지하고 위트있고 기지있게 가려면 더 재밌게 해야했을텐데... 아이디어 부재에 표현력도 아쉽다. 거기다 총 세권으로 나온다고 하던데 세트 디자인으로도 너무 아쉬운 디자인이다.
2.
그의 솔직함과 자유로운 생각이 좋다.
책의 귀퉁이를 많이도 접었다.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들었던 그의 생각.
+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이 글을 읽었을 때 어찌나 통쾌하던지. 내 마음이 사실 이랬다. 친구가 아는 사람이 사실 적어도 문제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너무도 힘들다. 유쾌해지려 이야기를 들어주려 위로해주려 노력한다. 회사에 있는 시간만으로도 가면을 쓰고 있는 에너지가 방전 직전인데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그 에너지를 쥐어짜낸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지만 그 때문에 혼자가 될까봐 금요일 밤의 열기에 혼자만 있는게 쓸쓸해서, sns사진을 보며 나 혼자만 있는 자신이 처량해서, 누군가 만나자는 얘기를 거절하지 못해서 그냥 그 자리에서 견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 영혼의 외침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듣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중요하다. 일단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억지로 누군가를 만날 필요 없다. 그건 사실 그 사람에게도 실례아닌가.
+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납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제 말을 금세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예술을 합니다.
......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요.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운의 원천이니까요.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 돈이 안되는 일을 이 시대에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술은 그렇게 쓸모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예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작은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이 좋다. 에술은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 이미 예술 학교에 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여기 있는 4년 동안 여러분의 임무는 여러분 내면에 있는 어린 예술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호해서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것이라고요. 글쓰기의 즐거움을 간직한 채로 학교를 졸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얘기했죠.
빌어먹을 우리 학교에는 왜 이런 스승이 없었을까.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생질을 하는걸까? 선생이라는 두글자만 봐도 내게 분노가 치미는건 왜일가? 어릴때부터 선생으로부터 상처도 많이 받고 실망도 많이 했다. 너무도 무신경하고 너무도 무책임하다. 대학이라는 곳은 사실 그 즐거움을 찾고 그것을 간직하게 지켜주면 그뿐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에게 현실은 이런 곳이니 그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건 어떠니? 라고 사려깊은 몇마디쯤이면 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대학 엿이나 먹어라.
+ 이것은 영화 <박하사탕>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한 인물이 온전히 역사를 담지하는 형태, 즉 역사의 굴곡, 시련, 또는 상징, 이 모든 것을 한 인물을 통해서 드러내고 그 인물이 여러 주변 인물들과 얽히면서 굴곡의 역사를 표상하는 방식입니다.
......
그런데 저는 하나의 인물이, 비록 소설 속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체현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나를 안심시킨다. 계속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실망할거다. 너무 실망하지말고 너무 아쉬워하지말자. 우린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린 가끔 대단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 인간에게도 너무도 많은 면이 있다.
우리는 아비를 죽이고 스승을 죽이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야 한다. 조정래, 이청준을 넘어서 박민규, 김영하를 넘어서 우린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한국적인 것 나가 죽으라지.
+ 이 이상한 혼종문학이(무라카미 하루키) 전 세계 서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의 소설은 '잘 써서'가 아니라 '이상하게 쓴' 덕분에 그토록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게 만약 실현된다면, 그 주인공은 아마도 한국의 정서를 잘 살린 문학이 아니라 이상한 것, 어지럽게 뒤섞인 것, 도저히 우리가 한국문학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한류를 지속시키기를 원한다면 더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이상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3.
자신감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내게, 이책이.
친구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예술, 지금 당장 해버리자.
대학은 즐거움을 찾고 유지하기만해도 성공이다.
인간이라는 거 그리 대단하지 않다.
붓을 다시 들게 기운을 주고 친구를 찾지 않아도 주말에 혼자 있어도 행복하다. 이게 내게 더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