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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피에로들의 집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문학동네












<꽃 핀 아몬드나무 Almond Blossm>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사망하던 해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고 조카의 탄생을 축복해주는 의미로 그려준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고 찬찬히 소설에 나온 그림과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호퍼의 그림에 눈이 갔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화 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도 흥미로웠다.

호퍼의 그림과 같이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호퍼에서 출발하여 고흐와 쭉 함께 한다. 호퍼 그림 속 인물들은 고독하다. 지독히도 고독한 풍경이다. 그 인물들 만큼 고흐도 고독하고 외로운 인생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그림은 따뜻하다. 작가가 고흐의 그림을 무대의 중심에 두고 카페의 이름도 그 그림을 따서 지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고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그 따뜻한 무언가를 주고 받아야 한다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영 환상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게 다름 아닌 허영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해서 말이야. 욕망보다 더 지독한 게 허영심이지.


허영: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


중요한 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해와 달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대개의 사람들은 그걸 잊고 지내지만 말예요. 더구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데, 그게 저로서는 왠지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생살이 돋는 것처럼 이따금씩 벅찬 느낌도 들고요.

그전에는 타인 때문에 순수하게 아파본 경험이 없는 것 같거든요. 

왜, 어떤 여자 때문에 몸부림치다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아니던가?

그 여자는 타인이 아니라고 믿었거든요.

그야 자네 생각이 그렇다는 거겠지. 절대적인 타인이 존재하지 않듯이, 절대적인 자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 다만 관계라는 게 존재할 뿐이지.


1. 너무도 사실적인 공간과 연극톤의 대사

소설의 시작은 안국역 아트선재로부터 시작된다. 몇백번은 지나갔을 그곳, 두어번 영화를 보기도 했던 그곳. 익숙한 지명들이 나온다. 정독도서관 그리고 성북동. 북악산을 조금 올라가다 성북동으로 빠지는 길이 눈에 선하다. 너무 잘 아는 동네라서 순식간에 소설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인물들의 대화를 읽을때면 다시 소설 밖으로 나와 밑줄을 그었다. 연극톤의 대사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러한 톤 덕분에 중반 너머서는 거창한 문장들을 인물들이 읊어대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빨간책방>에서 윤대녕 작가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왜 그가 인물들을 그렇게 그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작가 본인이 연극톤으로 말을 하곤 했다. 정말 진지한 사람 같았다. 말하는 톤에서부터 그것이 느껴지고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 진지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2. 관계 

책을 읽으며 유사가족을 다룬 영화, 소설 등이 떠올랐다. 먼저 <가족의 탄생>. 

엄태웅이 고두심을 데려왔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소리의 어이 없어하는 표정과 엄태웅의 능글맞음이 선명하다. 

최근에 읽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기억난다. 배다른 여동생과 함께 살기로 한 세자매, 그 네자매의 이야기. 이 만화책 또한 <빨간책방>에서 다뤘고, 

정말 오랜만에 뭉클한 감정을 몇번이나 느꼈다. (김중혁 소설가가 두번 울었다고 하길래 '에~ 설마 그정도씩이나?'라고 생각했는데 나 또한 몇번이나 눈물이 고였다.)

<가족의 탄생>이 여름의 바닷바람처럼 유쾌하고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따뜻하고 기분좋은 봄의 미풍같다면 

<피에로들의 집>은 겨울에 얼었던 세상이 조금씩 풀리는 입춘을 닮았다. 각각의 인물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큰 상처들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그들의 얘기를 들어준다. 


들어준다는 것.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 떠올리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 세상은 너무도 시끄럽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회사일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치고, 가정때문에 또 지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건 어쩌면 기적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여자친구의 얘기를 제외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은게 꽤 오래된 듯하다.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도대체가 시간이 없다고 느껴지고 말을 꺼내기가 민망하고 미안하다. 


문승영 선생님이 떠오른다. 생면부지의 어린 대학생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인연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도 먼저 연락을 주시는 선생님. 선생님의 권위의식도 없고 어떠한 바람도 없는 순수함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준다면 그렇게 내어줘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의 따뜻함을 닮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따뜻해지려고 마음을 내어주려는 노력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늘 마음이 쓰이는 회사의 동료들. 아직도 서먹한 그들과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아주 어릴적부터 갑자기 느끼는 당혹감이 밀려온다. 어떻게 해야 이 사람과 가까워질수 있을까에 대한 무지함? 어릴적엔 쉽게 친구가 됐다. 지금의 나는 왜 이리도 관계가 힘들까. 욕심이 너무 많은건 아닐까. 애초에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회사라는 집단에서 너무 이상적인 관계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관계에서 나만을 생각했다. 아직도 유치하게 밥을 먹을 때 내가 재밌는 얘기를 했으면 좋겠고 A가 B보다 나와 친하기를 나를 더 좋아하기를 바란다. 선배로서 잘 도와주지는 못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기만을 원한다. 


일을 하는 공간, 일을 하는 관계에서는 일이 우선인듯 싶다. 내 위치에서의 책임을 다 하는것이 먼저일 것이다. 다른이들의 짐을 덜어줘야만 하는 위치가 됐다. 일을 하자. 

그게 먼저다.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람들이 맞지 않다고 느낄지라도 다 덮어두고 일을 하자. 거기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동안은 그렇게 하고 싶다. 

관계에 대한 욕심은 그 다음에 부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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