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시도하다(provare a) = 노력하다(cercare di)"
이 조합, 이 어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났는데 금방 어떤 인연, 애정이 느껴지는 사람. 아직 알아야 할게 많은데도 오래전부터 알아온 것 같은 느낌.
평화를 만났을 때. 일본에 갔을 때. 그런 친구가 그런 사물이 그런 언어가 있다.
선생님은 우리 집에 한 시간 정도 이탈리아어를 가져왔다가 그대로 가져가버렸다.
나는 이 여정이 좋았다. 내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섰다.
갑자기 내 모든 책이 더는 필요치 않았다. 단순한 물건들인 듯했다. 내 창작 생활의 닻이 사라지고, 나를 이끌던 별들이 물러났다.
내 앞에 새로운 빈방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난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필요에 의해서 글을 쓰지만 기쁘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느꼈던 기쁨을 다시금 맛보았다. 누구도 읽지 않을 노트에 단어를 적어 넣는 기쁨 말이다. 나는 문장을 다듬지 않고 투박하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그리고 계속 불안한 상태다. 맹목적이지만 진실한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을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나를 자극한 것, 날 혼란에 빠뜨리고 불안하게 하는 것, 간단히 말해 나를 반응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을 때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한다. 글쓰기는 삶을 흡수하고 정리하는 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못하면 난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다.
추방의 정의에서조차 난 추방당했다.
기쁨에는 고통이 숨어 있다. 뜨거운 열정에는 어둠이 있다.
난 벽을 허물기 위해, 순수하게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세 번째 꼭짓점은 내 갈망, 내 노력에서 생겨났다.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했다.
......
이 새로운 여정이 날 어디로 데려갈까? 이 도주는 어디에서, 언제 끝날까? 도망치고 난 후 난 무엇을 할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도망은 아니었다. 도망을 쳤음에도 영어나 벵골어가 내 옆에 있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삼각형의 꼭짓점이 그렇듯 한 가지 꼭짓점은 다른 꼭짓점으로 연결될수밖에 없다.
......
나는 이 빈 공간에서, 이런 불확실에서 왔다. 빈 공간이 내 원천이요 운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 빈 공간에서, 이 모든 불확실에서 창조적 충동이 나왔다. 액자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이 말이다.
1.
엄마가 원하는 사회적 성공(부와 명예)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구실, 예의, 사람구실, 배려
내가 그리려는 꼭지점은 무얼까? 내 안에는 성공에 대한 욕망도 사람구실의 욕망도 있다. 동시에 사회적인 성공에 연연하고 싶지 않고 사람구실을 하면서 타인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욕망도 있다. 아마 난 그 욕망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세번째 꼭지점이 더 중요하다. 그것들의 균형을 잡아주고 내가 향할 곳을 명확히 제시하는 다른 하나의 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은 유명해지고 싶어서인가? 그림을 그릴때 나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림을 그릴때 난 분명 즐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책에 실리고 잡지에 실렸으면 하는 욕망은 다른 욕망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욕망. 그것을 달성하는 데에는 사실 분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강연을 해서 혹은 디자이너로서 경영자로서 유명해지기만 한다면 그 욕망은 달성될 것이다. 그때 가장 행복한 것은 엄마가 아닐까.
내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일까? 난 알고 싶다. 나에 대해서.
줌파 라히리의 글에 크게 동감한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난 나를 이해하고 싶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나의 일이 될까? 디자인을 하는 것도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이해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은 표현방법들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면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바꾸고 싶은 일 그리고 꿈 같은게 생기지 않을까?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싶다. 나에게 다가가고 싶다. 한발은 내게 한발은 세상을 향해 내딛고 싶다. 지금 당장 내가 그림을 가장 그리고 싶은지 언어를 배우고 싶은지 사진을 찍고 싶은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욕구가 있으면 하고 싶다. 해서 이해하고 느끼고 싶다. 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나와 세상을 느끼고 싶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찾는 걸까?
우리는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뭔가를 찾는다.
2.
난 두려워하고 있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선 하나를 긋는게, 한 마디를 입에서 내 뱉는게,
젓가락질을 하는게, 미소를 짓는게, 스쿼시 라켓을 들고 휘두르는게
두렵다.
어쩌면 디자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난 모든 것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지칭해야 할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 디자인을 잘 해내고 나서도 스스로를 인정하기보다 안심을 한다. 내 능력이 아니라 요행으로 일을 마무리 한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설날에 집에 내려가 술집에서 다트를 할 때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나를 지켜볼 때 나는 판단력을 잃고 집중력을 잃는다. 그냥 무심결에 포기하는 마음을 담아 오른팔을 던진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자신감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을 담아서 생각을 하고 내 몸을 인식하고 팔을 던져서 실패를 하더라도 의미있는 실패를 하고 싶다. 감정적으로 모든일을 하기보다 조금더 이성적으로 다가가고 싶다. 디자인을 할때도 감성적으로 충동적으로 하기보다 조금더 스스로 방법론을 찾아가면서 차근차근 디자인하고 싶다.
로고를 만들 때를 예로 들면,
1. 먼저 그들이 원하는 로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할 때(시장을 고려하고 우리 회사의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 그들에게 줘야할 로고는 무엇일까? 그 접점을 대략 그려보자.
> 문장으로 정리 할수도 있고 이미지(구체적인 그림이나 사진, 혹은 인물...)등을 붙잡자.
2. 그와 부합하는 자료들 리서치
3. 스케치해보기.
4. 처음에 그렸던 그림과 맞는지 점검
5. 다시 스케치
이와 같은 방법론을 대략이나마 지켜서 작업을 해보면 어떤 부분에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지 점검할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감이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다면 프로로서 작업을 하는데 평정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라면 늘 최고의 작업은 아니더라도 좋지 않은 작업은(실망스러운 작업은)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론을 찾고 싶다. 내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나는 혼자라는 걸 느끼기 위해 글을 쓴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는 뒤로 물러나 나를 발견하는 방법이었다.
첫 칼럼이 나오는 날, 난 아주 수줍은 성격인데도 광장 한가운데 나가 그 소식을 알리고 싶을 만큼 흥분했다.
3.
그녀의 글을 읽고 언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가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무언가에 마음이 가는 게 원하고 있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하면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욕망인지 불확실하지만 직접 그림을 그려보면 알 수 있다.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도할 때 의도를 갖고 시도하고 그 시도가 어땠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할 때 나만의 스타일을 갖고싶다. 내 장점과 부족한 점을 알고 싶다.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과 일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일을 할 때 어떤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는 지 알고 싶다.
이것들을 꼭 디자인을 하면서만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에 대한 생각을 할 때도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영화나 책이다. 디자인을 생각하는 것도 스쿼시를 하다 언어를 배우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해결이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혹은 디자인이라는 일과 연관짓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 머리를 비우고 그냥 하고 싶은 다른 행위를 하고 싶다. 운동도 그렇게 하고 싶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어떤의미가 있을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따지기 보다 얼마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고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을 목적 없이 해보고 싶다.
4.
그녀의 책을 더 읽고 싶다.
그녀의 글처럼 명확한 표현을 하고 싶다.
불확실한 세상을 본인을 이해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나 또한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래. 나와 세상을 사람들을 이해해서
의미있는 내 마음이 담긴 한발을 그들에게 나에게 세상에게 내딛고 싶다.